[인포스탁데일리=박상철 기자] 인공지능(AI)이 단순한 정보 검색의 보조 도구를 넘어, 소비자 구매 의사결정 전반을 통제하는 ‘최상위 고객 접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보 탐색의 주도권이 전통적인 웹사이트나 검색엔진에서 AI로 빠르게 이동함에 따라, 다수의 전문 AI 에이전트를 통합 관리하는 이른바 ‘슈퍼에이전트(Super Agent)’가 산업 생태계 재편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맥킨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약 50%가 챗GPT, 제미나이 등 AI 기반 검색을 이미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44%는 구매 의사결정 시 가장 선호하는 정보원으로 AI를 꼽아, 기존의 검색엔진(31%)이나 유통사 자체 웹사이트(9%)를 크게 웃돌며 소비 패턴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6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슈퍼에이전트, 차세대 고객 접점으로 부상할 것인가’ 보고서에 구체적으로 담겼다. 해당 보고서는 슈퍼에이전트를 사용자의 자연어 요청에서 근본적인 의도를 파악한 뒤, 분야별 전문 에이전트를 자율적으로 지휘해 업무를 처리하는 ‘오케스트레이터 에이전트(Orchestrator Agent)’로 정의했다. 이는 기존 금융권이나 IT 업계가 록인(Lock-in) 효과를 노리고 주도해 온 ‘슈퍼앱’ 전략과 구조적인 궤를 달리한다. 슈퍼앱 환경에서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 내에 여러 서비스가 모여 있더라도 사용자가 직접 필요한 메뉴를 찾아 이동해야만 했다. 반면 슈퍼에이전트 환경에서는 사용자가 목적만 입력하면 상위 AI가 스스로 필요한 하위 에이전트들을 호출해 결과물을 종합한다. 예를 들어, 자산 운용 방안을 묻는 고객의 단일 요청에 슈퍼에이전트가 예·적금을 확인하는 은행 에이전트, 주식을 분석하는 증권 에이전트, 소비 패턴을 조회하는 카드 에이전트를 동시다발적으로 가동해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는 식이다. 향후 에이전트의 권한이 더욱 확대될 경우, 단순 정보 조회를 넘어 실제 투자 상품의 매수나 자금 이체 등 복합적인 거래까지 슈퍼에이전트가 일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주요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슈퍼에이전트 형태의 서비스를 실무와 비즈니스 전면에 배치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자사의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을 기반으로 사내 20여 개의 전문 에이전트를 단일 창구에서 지휘하는 슈퍼에이전트 ‘슬랙봇(Slackbot)’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영업 파이프라인 분석이나 워크플로우 생성 등의 업무를 일괄 처리한 결과, 직원 만족도 96%를 달성함과 동시에 600만 달러 규모의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의 이커머스 기업 라쿠텐(Rakuten)은 그룹 내 쇼핑, 여행, 금융 등 17개 서비스에 개별 AI 에이전트를 도입한 데 이어, 이를 단일 접점으로 묶는 슈퍼에이전트 구축을 추진 중이다. 실제 라쿠텐 이치바(온라인 쇼핑몰)에 선제적으로 도입된 AI 쇼핑 에이전트 이용자는 일반 검색 고객 대비 평균 구매 금액이 17% 증가했고, 구매 소요 시간은 41% 단축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라쿠텐 트래블 이용자 역시 평균 주문 금액이 13% 증가했다. 미국 유통 공룡 월마트(Walmart)의 경우, 무분별한 에이전트 난립에 따른 사용자의 혼란을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고객용 ‘스파키(Sparky)’, 직원용 ‘어소시에이트 에이전트(Associate Agent)’, 파트너용 ‘마티(Marty)’, 개발자용 ‘디벨로퍼(Developer)’ 등 4개의 특화된 대표 에이전트를 구축해 창구를 단일화하는 고도화 계획을 수립했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슈퍼에이전트 플랫폼 구축도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오픈AI는 사용자가 챗GPT 화면 안에서 외부 서비스를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앱스 인 챗GPT(Apps in ChatGPT)’ 기능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브라질 핀테크 기업 픽페이(PicPay) 사용자는 별도의 앱 구동 없이 챗GPT 내에서 본인의 계좌 잔액과 투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다. 구글 또한 자사 AI 플랫폼 제미나이(Gemini)에 지메일, 구글 지도 등 내부 생태계를 비롯해 여행, 외식 등 외부 애플리케이션까지 원활하게 연동하는 ‘커넥티드 앱스(Connected Apps)’를 적용했다. 이는 AI가 단순한 정보 검색과 요약을 넘어, 식당 예약이나 렌터카 이용 등 실질적인 행동을 대행하는 상위 고객 접점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최상위 고객 접점의 지각 변동은 향후 기업들의 채널 전략과 투자 지형 전반에 구조적인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플랫폼 경쟁의 주도권이 온전히 AI로 넘어가면서, 기존 오프라인 점유율이나 포털 검색 노출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기업이더라도 AI의 추천 알고리즘에서 배제될 경우 순식간에 시장 점유율을 잃을 위험이 커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AI 모델의 답변에 자사 브랜드와 상품이 우선적으로 노출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체계화하는 ‘생성형엔진최적화(GEO, 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전략 수립이 시급해졌다. 특히 금융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다수의 기능이 모인 방대한 앱 구축을 넘어,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최적의 행동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AI 기반 고객가치관리(CVM)’ 역량으로 이동할 것으로 분석된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AI 기반 초개인화 CVM을 실제 도입한 금융사들은 맞춤형 콘텐츠 자동 생성을 통해 잠재 고객 발굴(리드 제너레이션) 효율을 최대 70% 개선했으며, 고객 참여도를 20~30%가량 제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KB금융 경영연구소는 "기술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 ‘상품을 잘 추천하는 AI’에서 ‘고객에게 지금 필요한 금융 행동을 판단하고 실행으로 연결하는 AI’로 고객 접점 전략을 신속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박상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