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채무조정 못 해줍니다”…절반 넘게 이유 모호한 ‘퇴짜’
매일경제-경제 · 2026-10-02 08:30
·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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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금융 채무조정 거절 8888건
거절 사유 모호한 ‘기타’ 53.6%
안철수 “제도 실효성 점검 어려워”
#. 경기도에 사는 70대 여성 A씨는 고아였던 자신을 거둬준 고모의 병원비로 쓸 9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채무조정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상속받은 토지가 있다는 이유로 채권자가 채무 조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토지는 공시지가 약 550만원의 묫자리였다. 이 토지는 이미 세금과 다른 채무로 압류돼있는 상태였다.
#. 전북에 거주하는 60대 남성 B씨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운영하던 카센터가 폐업하면서 약 22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빚이 6700만원까지 불어나자 그는 채무조정을 신청했으나 채권자의 반대에 부딪혀 거절당했다. 채권자는 가족 도움으로 마련한 2000만원대 아파트가 있으니 채무조정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채권자는 B씨의 집을 경매로 넘기겠다고 했고, B씨에게 원금 2200만원을 한꺼번에 갚을 것을 요구했다.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 이후 카드사·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가 자체 채무조정을 거절한 사례가 8888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64건은 불승인 사유가 금융회사 내부기준에 따른 ‘기타’로만 분류돼,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채무조정이 거절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여전업권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 이후 채무조정 신청·수용·거절 건수 및 거절사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개인채무자보호법이 시행된 2024년 10월 17일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카드사·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자체 채무조정 승인 건수는 11만1647건, 불승인 건수는 8888건으로 집계됐다.
개인채무자보호법(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은 연체 채무자를 과도한 추심과 연체이자로부터 보호하고, 금융회사를 상대로 직접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채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 소액 채권의 경우 금융회사에 직접 상환유예 등을 요청할 수 있는 채무조정 요청권, 7일에 7회를 초과하는 추심 연락을 금지하는 추심 제한, 연체이자 부과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채무조정 불승인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금융회사 내부기준에 따른 ‘기타’였다. 총 4764건으로 전체 불승인의 53.6%를 차지했다. 다중채무자를 이유로 한 불승인이 2534건(28.5%)으로 뒤를 이었고, 승인요건 미이행 734건, 연체·대출기간 기준 549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금감원은 ‘다중채무자’를 금융회사 내부기준에 따라 다중채무를 이유로 불승인한 경우, ‘기타’를 그 밖의 금융회사 내부기준에 따라 불승인한 경우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승인 사례의 절반 이상이 ‘기타’ 한 항목에 묶여 있어 금융회사들이 실제 어떤 내부기준을 적용해 채무조정을 거절했는지 현재 통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미 한 차례 채무조정을 받은 뒤 다시 상환조건 변경 등을 요청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을 받은 뒤 다시 상환조건 변경 등을 신청한 ‘재조정’ 신청자는 올해 1~8월 19만6694명에 달했다. 불과 8개월 만에 2024년 연간 19만9769명의 98.5%에 도달했으며, 지난해 연간 23만8793명과 비교해도 이미 82.4% 수준이다.
올해 재조정 신청 가운데 상환유예 신청은 16만8634명으로 전체의 85.7%를 차지했다. 신복위에 접수된 ‘채무조정 거절(부동의)’ 관련 민원 역시 올해 8월까지 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건의 2.4배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민원 62건도 이미 넘어섰다.
안철수 의원은 “카드·캐피탈사 등이 채무조정을 거절한 8888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64건의 사유가 ‘기타’ 한 항목으로 분류돼 있다”며 “채무조정 제도를 만들어 놓고 금융회사들이 어떤 내부기준으로 거절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면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의원은 “채무조정을 받은 뒤 다시 상환조건을 바꿔달라는 사람이 올해 8개월 만에 20만명에 육박했고, 이 가운데 85% 이상이 상환유예를 신청했다”며 “승인·불승인 건수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별 거절 기준과 채무조정 이후 다시 상환곤란에 빠지는 사례까지 금융당국이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