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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파이브 "올해 고성능 3D IC칩 개발…게임체인저 될 것"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인터뷰
"'무어의 법칙' 깨진 시대…반도체 설계, '플랫폼'만이 혁신"
"디자인하우스, 진화냐 도태냐 갈림길에 섰다"
"'무어의 법칙' 깨진 시대…반도체 설계, '플랫폼'만이 혁신"
"디자인하우스, 진화냐 도태냐 갈림길에 섰다"
“올 연말에 고성능 3D 집적회로(IC) 칩을 개발 완료할 것입니다.”
지난달 31일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이사는 회사 신제품 개발 계획을 밝히며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8개 합친 것보다 대역폭(밴드위스)이 더 크고, 전력 소모는 더 적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 제품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도 말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반도체 설계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하다 2019년 세미파이브를 창업했다.
조 대표는 세미파이브를 ‘주문형반도체(ASIC) 설계 플랫폼 기업’으로 정의한다. TSMC가 반도체 제조를 플랫폼화해 ‘팹리스 혁명’을 이끌어낸 것처럼, 세미파이브는 설계를 플랫폼화해 누구든 원하는 독자 칩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조 대표는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기존의 혁신방식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과거의 반도체 산업은 공정만 미세화하면 성능, 전력 효율, 가격 문제 모두 해결됐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공정 고도화에 따른 비용 증가가 집적을 통한 절감 효과를 넘어서면서 기존 방식의 혁신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제는 개별 기기와 서비스 목적에 딱 맞춘 ASIC 칩을 다품종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어내는 역량이 생존을 가르는 핵심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디자인하우스는 진화할 것이냐, 도태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섰다”고도 말했다. 팹리스 업체가 만들어온 설계도면을 파운드리 업체 공정에 맞게끔 다듬는 역할만 하는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회사 실적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22~2023년 400억원대에 머물던 매출은 2024년부터 1000억원대로 올라섰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94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481억원) 대비 97% 성장했다. 다만 실적과 달리 주가 흐름은 부진하다. 한때 5만원을 넘기도 했던 주가는 최근 1만5000원대로 떨어졌다. 조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진 점을 거론하며 “회사 본연의 가치가 분명한 만큼 곧 반등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진행한 조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BCG에서 반도체 회사 창업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BCG에서 접한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커지기만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시장이 성장하는 동시에 산업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었습니다. BCG에서 수많은 반도체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런 흐름을 분명하게 봤습니다. 이에 맞춰 사업을 하면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하고 있었습니까.
“과거에는 인텔이나 퀄컴이 최신 공정으로 칩 한두 개를 만들면 전 세계가 이를 사다 썼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제는 칩 하나로 모든 시장을 대응할 수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성장을 유지하려면 개별 기업과 디바이스 사양에 맞춘 최적화된 ASIC을 여러 종류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 거대한 전환점을 포착하고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존의 공정 미세화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습니까.
“2000년대 중반까지는 2년마다 반도체가 2배 작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속도는 빨라지고 가격은 저렴해졌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작아져도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듀얼코어·멀티코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력 효율 개선마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정적으로 미세 공정 개발비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으로 폭증하면서, 집적을 통한 비용 절감보다 기술 고도화로 인한 비용 증가가 훨씬 커졌습니다. 기존 혁신의 동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디바이스 제조사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컸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다음 세대 칩이 나오면 성능이 대폭 향상됐기 때문에 고객들이 기기를 계속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형 칩이 나와도 성능 차이가 미미합니다. 당장 PC 시장만 봐도 소비자들이 몇 년 전 구매한 제품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디바이스 업체들은 마진 확보와 제품 차별화를 위해 불필요한 기능은 덜어내 단가를 낮추거나, 특정 기능을 강화한 독자 칩을 원하게 됐습니다. 한 세대에서 1~2개 칩만 만들던 시절에서 7~8개의 각기 다른 칩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7~8개의 다른 칩을 일일이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개발비가 칩당 수백억 원씩 들어가고 엔지니어도 부족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설계 플랫폼’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공통으로 사용되는 요소를 정형화해 재사용하고 자동화율을 높여야만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도체 설계에서 ‘재사용’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국내 인공지능(AI) 가속기 스타트업인 리벨리온, 퓨리오사AI, 하이퍼엑셀 등의 AI 칩은 핵심 연산 로직이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 컨트롤러, 고속 입출력 인터페이스(PCIe), 내부 데이터 통로, 관리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은 거의 동일합니다. 반도체 개발 비용과 시간의 70~80%는 핵심 연산부가 아닌 이 공통 영역에 투입됩니다. 세미파이브는 이 공통 부위를 검증된 블록 형태로 미리 완성해 두었습니다. 게임 개발 시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을 쓰듯, 고객은 핵심 로직만 갖고 와서 우리 플랫폼에 얹으면 됩니다.”
▷TSMC의 성장 모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TSMC 등장 전에는 모든 반도체 회사가 자사 공장(팹)을 직접 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공정 고도화로 팹 건설 비용이 폭등하자 TSMC가 나타나 ‘제조의 플랫폼화’를 이뤘습니다. 세미파이브는 ‘설계의 플랫폼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모든 설계를 처음부터 직접 다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설계를 플랫폼화한 기업이 TSMC처럼 시장을 지배할 것입니다.”
▷기존 디자인하우스 업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진화하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과거 디자인하우스는 고객이 설계 도면(RTL)을 완성해 오면 이를 제조용 필름으로 변환하는 백엔드(물리 설계) 작업만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사가 초기 논리 구조를 짜는 프론트엔드 설계까지 요구하거나, 반도체 비전문 기업이 직접 칩을 만들려는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프론트엔드 역량과 ASIC(ASIC) 시스템으로 진화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인력을 대거 투입해 프론트엔드 설계를 병행하면 되지 않습니까.
“인력만 늘리는 방식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함정에 빠집니다. 과제 하나에 100명씩 투입되면 1년에 2~3개 과제밖에 못 합니다. 고객사는 성공하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리지만, 외주를 받아서 일하는 회사는 인력 비용 부담으로 수익성이 제한됩니다. 결국 동일한 인력으로 자동화와 설계 재사용성을 극대화해 동시에 10개 이상의 과제를 처리하는 플랫폼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 도면 제공에 그치지 않고 파운드리 생산, 패키징, 수급 관리, 품질 검증까지 공급망 전체를 총괄합니다. 고객이 필요한 칩을 주문하면 완제품 상태로 공급하며, 칩 제조용 마스크 독점 생산권도 세미파이브가 가집니다. 제조 시설을 소유하지 않았을 뿐, 전 과정을 총괄하는 100% 제조업입니다. 심지어 PCIe 슬롯에 꽂아 즉시 구동할 수 있는 완성형 검증 보드와 시스템 소프트웨어까지 일괄 제공합니다.”
▷올해 말 개발 완료 예정인 3D 집적회로(IC) 기반 고성능 AI 칩은 어떤 기술입니까.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비교해 말씀드리겠습니다. HBM 칩 하나에 장착된 물리적인 금속 핀의 개수는 1024~2048개입니다. HBM을 8개 쓴다고 치면, 데이터가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인 채널이 대략 1만6000여개입니다. 만일 HBM을 활용해 1만6000여개의 채널로 데이터를 보내려면 속도가 대단히 빨라야 합니다.
반면 저희가 만들고 있는 3D IC 칩은 메모리와 AI가 연결되는 물리적인 채널의 수가 60만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채널에서 데이터 전송 속도가 HBM보다는 느리더라도 전체적으로는 HBM 이상의 대역폭(밴드위스)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HBM 대비 전력 소모를 5분의 1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채널 수가 압도적이어서 전체 데이터 대역폭은 HBM4 8개를 탑재한 시스템보다 최대 20% 높습니다. 구조가 단순해져 생산 단가도 대폭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세미파이브가 개발하는 3D IC가 AI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기존 HBM 시장을 대체하게 됩니까.
“데이터 패턴이 불특정하고 범용성이 중요한 엔비디아 스타일의 AI 칩은 HBM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서비스 목적에 맞춰 데이터 처리 패턴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전용 AI 칩(ASIC) 영역에서는 3D-IC가 HBM을 빠르게 대체할 것입니다. 고성능 데이터센터는 물론 스마트워치, 카메라, 엣지 장비 등 소형화와 전력 효율이 핵심인 디바이스 전반으로 확산할 것입니다.”
▷이 제품은 언제쯤 본격적으로 양산될 것이라 보십니까.
“실제로 오퍼레이션을 받는 것은 내년으로 예상합니다.”
▷세미파이브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추가 M&A 계획이 있습니까?
“저희는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M&A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점을 예상하긴 어렵습니다. M&A는 상대방의 의사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올해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십과 실적 목표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습니까.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물론,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의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 채널 파트너’ 지위를 확보해 글로벌 고객사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외 80여 개 고객사를 확보했으며, 미국 설계자산(IP) 업체 아날로그비츠 인수 등을 통해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 1200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최근 개발 매출을 넘어 양산 제품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매출액 2000억 원을 달성하는 시점에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할 것으로 봅니다.”
▷올 상반기 회사 실적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SIC 턴키, 양산, IP 라이선스로 이어지는 확장형 사업 모델이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하반기에는 성장세가 한층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고객사의 양산 전환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고, 확보해놓은 수주 잔고와 양산 물량도 순차적으로 반영될 것입니다.”
▷실적과 달리 주가 흐름은 아쉽습니다.
“증시가 전반적으로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 듯합니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진 점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상장 초기만 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1%가 채 안 됐는데, 지금은 5% 이상으로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지만, 적어도 ASIC 영역에서 세미파이브의 가치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인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광식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달 31일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이사는 회사 신제품 개발 계획을 밝히며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8개 합친 것보다 대역폭(밴드위스)이 더 크고, 전력 소모는 더 적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 제품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도 말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반도체 설계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하다 2019년 세미파이브를 창업했다.
조 대표는 세미파이브를 ‘주문형반도체(ASIC) 설계 플랫폼 기업’으로 정의한다. TSMC가 반도체 제조를 플랫폼화해 ‘팹리스 혁명’을 이끌어낸 것처럼, 세미파이브는 설계를 플랫폼화해 누구든 원하는 독자 칩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조 대표는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기존의 혁신방식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과거의 반도체 산업은 공정만 미세화하면 성능, 전력 효율, 가격 문제 모두 해결됐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공정 고도화에 따른 비용 증가가 집적을 통한 절감 효과를 넘어서면서 기존 방식의 혁신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제는 개별 기기와 서비스 목적에 딱 맞춘 ASIC 칩을 다품종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어내는 역량이 생존을 가르는 핵심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디자인하우스는 진화할 것이냐, 도태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섰다”고도 말했다. 팹리스 업체가 만들어온 설계도면을 파운드리 업체 공정에 맞게끔 다듬는 역할만 하는 시대는 갔다는 것이다.
회사 실적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22~2023년 400억원대에 머물던 매출은 2024년부터 1000억원대로 올라섰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94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481억원) 대비 97% 성장했다. 다만 실적과 달리 주가 흐름은 부진하다. 한때 5만원을 넘기도 했던 주가는 최근 1만5000원대로 떨어졌다. 조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진 점을 거론하며 “회사 본연의 가치가 분명한 만큼 곧 반등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진행한 조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무어의 법칙은 끝났다...과거의 혁신 동력도 사라져"
▷BCG에서 반도체 회사 창업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BCG에서 접한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커지기만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시장이 성장하는 동시에 산업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었습니다. BCG에서 수많은 반도체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런 흐름을 분명하게 봤습니다. 이에 맞춰 사업을 하면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하고 있었습니까.
“과거에는 인텔이나 퀄컴이 최신 공정으로 칩 한두 개를 만들면 전 세계가 이를 사다 썼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제는 칩 하나로 모든 시장을 대응할 수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성장을 유지하려면 개별 기업과 디바이스 사양에 맞춘 최적화된 ASIC을 여러 종류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 거대한 전환점을 포착하고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존의 공정 미세화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습니까.
“2000년대 중반까지는 2년마다 반도체가 2배 작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속도는 빨라지고 가격은 저렴해졌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작아져도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듀얼코어·멀티코어가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력 효율 개선마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정적으로 미세 공정 개발비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으로 폭증하면서, 집적을 통한 비용 절감보다 기술 고도화로 인한 비용 증가가 훨씬 커졌습니다. 기존 혁신의 동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디바이스 제조사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컸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다음 세대 칩이 나오면 성능이 대폭 향상됐기 때문에 고객들이 기기를 계속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형 칩이 나와도 성능 차이가 미미합니다. 당장 PC 시장만 봐도 소비자들이 몇 년 전 구매한 제품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디바이스 업체들은 마진 확보와 제품 차별화를 위해 불필요한 기능은 덜어내 단가를 낮추거나, 특정 기능을 강화한 독자 칩을 원하게 됐습니다. 한 세대에서 1~2개 칩만 만들던 시절에서 7~8개의 각기 다른 칩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7~8개의 다른 칩을 일일이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개발비가 칩당 수백억 원씩 들어가고 엔지니어도 부족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설계 플랫폼’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공통으로 사용되는 요소를 정형화해 재사용하고 자동화율을 높여야만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도체 설계에서 ‘재사용’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국내 인공지능(AI) 가속기 스타트업인 리벨리온, 퓨리오사AI, 하이퍼엑셀 등의 AI 칩은 핵심 연산 로직이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 컨트롤러, 고속 입출력 인터페이스(PCIe), 내부 데이터 통로, 관리용 중앙처리장치(CPU) 등은 거의 동일합니다. 반도체 개발 비용과 시간의 70~80%는 핵심 연산부가 아닌 이 공통 영역에 투입됩니다. 세미파이브는 이 공통 부위를 검증된 블록 형태로 미리 완성해 두었습니다. 게임 개발 시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을 쓰듯, 고객은 핵심 로직만 갖고 와서 우리 플랫폼에 얹으면 됩니다.”
▷TSMC의 성장 모델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TSMC 등장 전에는 모든 반도체 회사가 자사 공장(팹)을 직접 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공정 고도화로 팹 건설 비용이 폭등하자 TSMC가 나타나 ‘제조의 플랫폼화’를 이뤘습니다. 세미파이브는 ‘설계의 플랫폼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모든 설계를 처음부터 직접 다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설계를 플랫폼화한 기업이 TSMC처럼 시장을 지배할 것입니다.”
▷기존 디자인하우스 업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진화하거나, 도태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과거 디자인하우스는 고객이 설계 도면(RTL)을 완성해 오면 이를 제조용 필름으로 변환하는 백엔드(물리 설계) 작업만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사가 초기 논리 구조를 짜는 프론트엔드 설계까지 요구하거나, 반도체 비전문 기업이 직접 칩을 만들려는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프론트엔드 역량과 ASIC(ASIC) 시스템으로 진화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인력을 대거 투입해 프론트엔드 설계를 병행하면 되지 않습니까.
“인력만 늘리는 방식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함정에 빠집니다. 과제 하나에 100명씩 투입되면 1년에 2~3개 과제밖에 못 합니다. 고객사는 성공하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리지만, 외주를 받아서 일하는 회사는 인력 비용 부담으로 수익성이 제한됩니다. 결국 동일한 인력으로 자동화와 설계 재사용성을 극대화해 동시에 10개 이상의 과제를 처리하는 플랫폼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 높아져...가치 인정받는 것"
▷세미파이브는 최종 실물 칩 제조와 공급까지 책임집니까.“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 도면 제공에 그치지 않고 파운드리 생산, 패키징, 수급 관리, 품질 검증까지 공급망 전체를 총괄합니다. 고객이 필요한 칩을 주문하면 완제품 상태로 공급하며, 칩 제조용 마스크 독점 생산권도 세미파이브가 가집니다. 제조 시설을 소유하지 않았을 뿐, 전 과정을 총괄하는 100% 제조업입니다. 심지어 PCIe 슬롯에 꽂아 즉시 구동할 수 있는 완성형 검증 보드와 시스템 소프트웨어까지 일괄 제공합니다.”
▷올해 말 개발 완료 예정인 3D 집적회로(IC) 기반 고성능 AI 칩은 어떤 기술입니까.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비교해 말씀드리겠습니다. HBM 칩 하나에 장착된 물리적인 금속 핀의 개수는 1024~2048개입니다. HBM을 8개 쓴다고 치면, 데이터가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인 채널이 대략 1만6000여개입니다. 만일 HBM을 활용해 1만6000여개의 채널로 데이터를 보내려면 속도가 대단히 빨라야 합니다.
반면 저희가 만들고 있는 3D IC 칩은 메모리와 AI가 연결되는 물리적인 채널의 수가 60만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채널에서 데이터 전송 속도가 HBM보다는 느리더라도 전체적으로는 HBM 이상의 대역폭(밴드위스)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HBM 대비 전력 소모를 5분의 1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채널 수가 압도적이어서 전체 데이터 대역폭은 HBM4 8개를 탑재한 시스템보다 최대 20% 높습니다. 구조가 단순해져 생산 단가도 대폭 절감할 수 있습니다. 세미파이브가 개발하는 3D IC가 AI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기존 HBM 시장을 대체하게 됩니까.
“데이터 패턴이 불특정하고 범용성이 중요한 엔비디아 스타일의 AI 칩은 HBM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서비스 목적에 맞춰 데이터 처리 패턴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전용 AI 칩(ASIC) 영역에서는 3D-IC가 HBM을 빠르게 대체할 것입니다. 고성능 데이터센터는 물론 스마트워치, 카메라, 엣지 장비 등 소형화와 전력 효율이 핵심인 디바이스 전반으로 확산할 것입니다.”
▷이 제품은 언제쯤 본격적으로 양산될 것이라 보십니까.
“실제로 오퍼레이션을 받는 것은 내년으로 예상합니다.”
▷세미파이브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추가 M&A 계획이 있습니까?
“저희는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M&A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점을 예상하긴 어렵습니다. M&A는 상대방의 의사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올해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파트너십과 실적 목표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습니까.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물론,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의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 채널 파트너’ 지위를 확보해 글로벌 고객사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외 80여 개 고객사를 확보했으며, 미국 설계자산(IP) 업체 아날로그비츠 인수 등을 통해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 1200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최근 개발 매출을 넘어 양산 제품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매출액 2000억 원을 달성하는 시점에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할 것으로 봅니다.”
▷올 상반기 회사 실적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SIC 턴키, 양산, IP 라이선스로 이어지는 확장형 사업 모델이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하반기에는 성장세가 한층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고객사의 양산 전환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고, 확보해놓은 수주 잔고와 양산 물량도 순차적으로 반영될 것입니다.”
▷실적과 달리 주가 흐름은 아쉽습니다.
“증시가 전반적으로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 듯합니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진 점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상장 초기만 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1%가 채 안 됐는데, 지금은 5% 이상으로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지만, 적어도 ASIC 영역에서 세미파이브의 가치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인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광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