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스탁데일리=윤서연 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내 상장사의 이익이 모회사와 자회사에 중복 반영되는 '더블카운팅' 비중이 미국의 14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와 정부의 지주회사 관련 세제특례 연장을 두고 정책 방향이 엇갈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상장사의 더블카운팅 이익 비중은 15.5%로 집계됐다. 미국의 1.1%와 비교하면 14.1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일본 11.1%, 영국 5.0%도 웃돌았다.
더블카운팅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구조에서 동일한 기업가치와 이익이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내 증시의 중복이익 규모는 최근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022년 14조원이었던 중복이익은 지난해 27조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89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대형 상장 자회사의 실적 증가가 맞물리면서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이익 중복 규모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코스피 예상 순이익 796조원 가운데 89조원이 모회사와 자회사에 중복 반영되는 셈이다. 이를 제거하면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은 7.0배에서 7.9배로 높아진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낮은 PER이 실제 시장의 밸류에이션보다 낮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구조에서는 동일한 기업가치와 이익이 시장에서 반복 평가되며 이는 모회사 할인과 일반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중복상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의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중복상장하려는 경우 모회사가 '3%룰' 방식으로 주주 동의를 받도록 하고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 영향 평가와 보호 방안 마련, 주주와의 소통 등 주주충실 의무를 기반으로 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엄수진 한화증권 연구원은 "자회사 상장에 관한 풍문만 돌아도 모회사 주가가 타격을 입곤 했다"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은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를 보호할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주회사 설립·전환 과정에서 적용되는 현물출자 과세이연 특례를 다시 연장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위한 주식 현물출자 과세이연 특례를 기존 2026년 말에서 2028년 말까지 2년 연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9년 확정된 '4년 거치 3년 분할납부' 적용 시점도 2027년에서 2029년으로 다시 미뤄졌다.
해당 특례는 지배주주가 보유한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할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를 지주회사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미뤄주는 제도다. 2000년 3년 한시 제도로 도입됐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연장돼 이번 연장이 확정될 경우 아홉 번째가 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에 대해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 정책과 과세이연 특례 연장이 서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포럼은 해당 특례가 기업을 분할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가 함께 상장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며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관련 세제 혜택을 연장하는 것은 정책 정합성 측면에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이른바 '주가 누르기'를 통한 상속·증여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중복상장을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로 명시한 점도 문제 삼았다.
포럼은 현물출자 과세이연 특례가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와 승계 과정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지배주주가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면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고 이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가 모두 상장된 구조가 형성되면서 지주회사 할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세이연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럼이 인용한 차규근 의원실의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70개사가 해당 특례를 활용해 총 13조2669억원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이연했다.
포럼은 일반적인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할 경우 이 기간 이연된 세금이 약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재정경제부가 이번 세제개편안을 통해 향후 5년간 기대하는 세수 효과 3조4430억원과 비슷한 규모라는 설명이다.
포럼은 "해당 특례는 3년 한시 제도로 도입됐지만 26년 동안 반복적으로 연장돼 왔다"며 "순환출자 해소와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당초 도입 목적이 현재까지 특례를 유지해야 할 근거가 되는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오는 9월 1일 국무회의 의결 전 과세이연 특례 연장과 분할납부 재유예 조항을 세법 개정안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안에 그대로 포함될 경우 국회가 세법 심의 과정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해 특례가 예정대로 올해 말 종료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복상장 문제가 국내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부각된 만큼, 향후 세법 개정 과정에서 지주회사 과세이연 특례를 둘러싼 논의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윤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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