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 더 빌려준다는데, 왜 나만?”…은행 주담대 빗장 안열리는 이유
매일경제-경제 · 2026-08-18 10:30
·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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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높이면서 은행권에 약 30조원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겼지만, 실제 대출시장에서는 공급 확대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잔금대출 등 집단대출을 적극 공급하라는 신호를 내놨지만 은행들은 총량 관리 기준이 확정될 때까지 관망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고LTV 주택담보대출까지 상당 규모 쌓여 있어 은행들이 대출 확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13일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0%로 높였다. 이에 따라 금융권이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가계대출 여력은 약 30조원 늘어났다. 금융당국은 새로 확보된 여력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주비, 중도금, 잔금대출 등 집단대출에 우선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움직임은 아직 제한적이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은 다음달 입주 예정인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 방배에 각각 1000억원 규모의 잔금대출 한도를 배정했다. 우리은행 역시 비슷한 수준의 한도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5개 은행이 모두 참여해도 총한도는 5000억원 안팎에 그친다. 3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입주 수요를 충분히 소화하기엔 부족한 규모다.
은행들이 선뜻 대출 공급을 늘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총량 관리 방식이 있다. 집단대출을 은행별 총량 관리에서 완전히 제외할지, 별도의 버퍼를 인정할지 등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먼저 한도를 확대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은행권의 신중론은 주택담보대출 건전성 관리와도 맞물려 있다. 주요 시중은행에는 담보가치에 비해 대출 규모가 큰 고LTV 주담대가 상당 수준 쌓여 있어 신규 대출을 늘리는 동시에 기존 여신의 위험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KB국민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LTV 80% 이상 국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조2187억원이다. 이 가운데 LTV 80% 이상~100% 미만이 2조1819억원, 100% 이상이 368억원이다. LTV 60% 이상~80% 미만 대출도 37조9338억원에 달했다.
신한은행 역시 6월 말 기준 LTV 80% 초과~100% 이하 주거용 주담대가 8조680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364억원(4.0%) 증가했다. LTV 60% 초과~80% 이하 대출은 24조2450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LTV 60%를 넘는 주담대는 총 32조9258억원으로 전체 주담대의 43.1%를 차지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LTV 80% 이상 주담대를 합하면 10조8995억원에 이른다. LTV가 높을수록 주택가격이 하락했을 때 담보를 처분하더라도 대출금을 전부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은행 입장에서는 신규 대출 공급과 함께 기존 고LTV 여신의 위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셈이다.
금융당국 역시 고LTV 대출에 대한 관리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LTV 60%를 초과하는 주담대에는 일반 주담대보다 높은 위험가중치(RW)가 적용된다. 내년부터는 LTV 수준에 따라 위험가중치가 일반 주담대의 2~4배까지 높아질 예정이다.
실제 대출 현장에서도 은행들이 보수적으로 한도를 산정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집값이 분양가보다 크게 오른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는 입주 시점의 감정가 대신 분양가를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시세를 담보가치로 인정할 경우 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금융당국이 대출 공급 여력을 늘렸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총량 관리와 건전성이라는 두 가지 부담이 동시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총량 관리 기준과 집단대출 세부 기준이 확정되더라도 고LTV 여신에 대한 위험 관리가 필요한 만큼, 늘어난 30조원의 대출 여력이 단기간에 시장에 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대출 공급 여력을 늘렸다고 해서 차주들이 곧바로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은행별 총량 관리 기준과 집단대출 세부 기준이 확정되고 고LTV 여신에 대한 건전성 부담까지 해소돼야 실제 공급 확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은행들이 주담대 관리 수위를 높이면서 대출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5대 은행이 6월 새로 취급한 분할상환 방식 주담대의 평균 가산금리는 3.27%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7월 이후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