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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K우먼]20년 베테랑의 '늦깎이 공부'…최현수 "제지는 저무는 산업 아닌 변하는 산업"

아시아경제-경제 · 2026-10-13 09:10 · 깨끗한나라(00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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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지연합회 73년 만 첫 여성회장 깨끗한나라 대표로 경영도 참여 "종이로 어떤 가치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최현수 한국제지연합회장(깨끗한나라 대표)은 지난 1년 6개월간 학생의 마음으로 공부했다. 20년간 제지업계에 몸담아 온 '베테랑'이었지만, 화장지와 생리대 같은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회사를 이끌어온 그에게 골판지 원지(라이너지)나 인쇄용지는 익숙한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원사들의 제품과 사업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업종마다 지닌 저마다의 어려움이 보였다. 그는 그렇게 모은 과제를 정리해 해법을 제안하고 필요한 협력사를 이어주는 업계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구 감소와 디지털화로 머지않아 종이가 사라질 것이란 관측이 심심찮게 나오고, 값싼 중국산 종이 제품과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제지산업을 '저무는 산업'이 아닌 '가치와 쓰임이 변하는 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를 만나 국내 제지산업의 미래와 리더로서 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제지연합회 73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에 올랐다. 취임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 ▲'첫 여성 회장'이라는 상징성도 의미가 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제지산업을 대표하는 자리라는 책임감이 더 컸다. 지금 제지산업은 원료와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고 국내 수요도 예전 같지 않다. 반면 탈플라스틱과 탄소중립이 세계적 흐름이 되면서 종이의 친환경적 가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장의 어려움을 버티는 데 그치지 않고 제지산업의 다음 50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첫 여성 회장이라는 사실이 후배들에게 '나도 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나중에는 이러한 단순한 기록보다, 내가 회장을 맡았던 시기에 제지산업이 어떤 새로운 길을 열었는가로 평가받고 싶다. -제지산업은 대표적인 남성 중심 산업으로 꼽힌다. 여성으로서 어려웠던 순간은 없었나.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여성이 훨씬 적었고 여성 리더는 더욱 드물었다. 내 판단과 전문성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여성이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 사업과 현장을 얼마나 아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책임지는가였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보고, 구성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숫자로 확인했다. 결정할 때는 분명하게 결정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확인했다. 신뢰는 성별이나 직책이 아니라 실력과 판단 그리고 결과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제지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제지산업이 과거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화와 인구구조 변화로 인쇄용지 등 일부 수요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이 시장의 변화로 산업 전체를 판단해선 안 된다. 제지산업은 연간 생산액 약 27조원, 고용인력 6만명 규모의 국가 기간 제조업이다. 생산량의 약 24%를 해외에 팔아 연간 22억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종이가 맡을 역할이다. 종이는 플라스틱과 석유화학 소재를 대신할 친환경 소재로 다시 주목받고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인 89%의 폐지 재활용률도 높은 경쟁력이다. 쓰임도 친환경 포장재를 넘어 셀룰로오스 나노섬유, 리그닌처럼 바이오·전자 등 첨단산업 소재로 넓어지고 있다. 앞으로 제지산업의 경쟁력은 종이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종이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소재가 보조 사업을 넘어 주력 수익원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가. ▲식품 용기처럼 지금 우리가 직접 쓰고 있는 용도부터 먼저 전환될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가 당장 내년부터 적용되는 만큼 여기서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가 관건이다. 소재 산업은 고수익 제품으로 갈 좋은 기회다. 나무 셀룰로오스 기반 소재는 이미 바이오나 화장품 원료로도 쓰이고 있다. 어떤 부가가치를 낼지 초점만 잘 잡으면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다. 철강과 화학이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업체에 밀렸듯, 물량 중심의 제조업은 앞으로 크게 흔들릴 것이다. 장치산업인 제지 역시 규모의 경제보다 부가가치의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 도입 등 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장기적으로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크게 세 갈래로 본다. 첫째는 공장이다. 제지는 제조원가의 약 25%가 에너지 비용일 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이다. AI와 데이터로 생산계획을 세우고, 설비 이상을 미리 확인하고, 품질과 전력, 스팀 사용까지 실시간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물류와 유통이다. 완제품이 수송되고 해외로 나가는 과정을 택배처럼 실시간으로 추적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고객이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생성형 AI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이미 갖춰졌다. 얼마나 빨리 적응해 사람이 정말 필요한 일에 집중하느냐가 관건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북미를 겨냥해 성과를 내고 있다. 북미 시장을 선택한 배경은. ▲예전에는 기반이 없는 나라에 나갔다면 이제는 부가가치가 있는 시장을 찾아 나가는 흐름이다. 처음엔 '이걸 어떻게 미국까지 수출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위생용품에서 충족되지 않은 수요가 있었고, 현지와 함께 제품을 개발하며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유럽도 무거운 종이를 보내기 어려운 먼 시장 같지만, 내년부터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친환경·저탄소 제품의 수출문이 열릴 것으로 본다. 나라마다 요구는 정말 다르다. 미국 여성용품은 사이즈와 흡수량 기준이 우리와 다르다. 동남아는 한 번에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달라 소포장 수요가 있고, 같은 동남아 안에서도 종교에 따라 또 다르다. 그 차이를 잘 듣고 제품에 반영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엔 깨끗한나라 대표직에도 복귀했다. 한국제지연합회장과 깨끗한나라 대표, 두 자리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두 자리에서 느끼는 역할과 책임은 상당히 다르다. 깨끗한나라에서는 숫자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 있어 성과를 내도록 밀고 나간다. 반면 연합회는 서로 다른 회원사로 이뤄진 조직이다. 의견을 충분히 듣고 과제를 정리해 방향을 잡고, 정부와 이해관계자에게 해결의 길을 찾아주는 가교 구실이 중요하다. 다만 원칙은 같다. 현장을 제대로 보고, 판단 기준을 분명히 하고, 결정한 것은 끝까지 실행하는 것이다. 충분히 듣는 것과 결정을 미루는 것은 다르다. 리더가 모든 답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방향과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구성원의 힘을 모아 그 결정이 성과로 이어질 때까지 책임지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예비 여성 리더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데니스 뇌르마르크의 <가짜 노동>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제목이 조금 강한데, 일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 열심히 일하는데 그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회의와 보고서가 많고 늦게까지 일한다고 좋은 조직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얼마나 열심히 했나'보다 '이 일이 정말 필요한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좋은 조직은 늘 바쁜 조직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조직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침대 빼고 수술대 놓았더니…" 1.7조 뿌린 큰 손,...-선배 여성 리더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가능성에 한계를 먼저 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성이니까 여기까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선을 긋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은 아니었다. 부딪히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배웠다. 기회는 완벽하게 준비됐을 때만 오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은 일하면서 채우면 된다. 성별과 상관없이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려면 계속 공부하고, 모르면 묻고, 자신을 개발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배우며 가는 것도 중요하다. 언젠가는 '첫 여성'이라는 말이 특별하지 않을 만큼 많은 여성이 자연스럽게 기업과 산업을 이끄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2025년 한국제지연합회 첫 여성 회장으로 선임돼 친환경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과 AI 기반 제조 혁신, 수출 경쟁력 강화 등 제지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깨끗한나라에서는 고객 중심 경영과 친환경·자원순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53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